정호승·안도현 벽 / 정호승 마지막 잎새 2012. 1. 13. 03:22 벽정호승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벽이 되었다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결국 벽이 되었다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물 한잔에 한조각을 먹을 뿐이다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새창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