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

바람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 김정란

마지막 잎새 2012. 10. 3. 09:50




바람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김정란



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빈 유리병
바닥에 떨어진 不隨意의 공허
또는 갈망
감이 잡히지 않는
생명의 뒤에 숨어있는
기질 기질
聖 기질

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완전히 비어버리기를 바랬다
하느님, 떨면서, 하느님,
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길 위에 서있는
작은 꽃잎사귀가 되고 싶었다

아주 조그만 조그만 깨어있는 꽃의 잎사귀 한 개

바람이 불 때마다 내 마음속에 은가루처럼 떨어지는
당신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다

내 몸의 섬모를 다 흔들어 나를 비우고
그 말로 내 몸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깨져 버린
귀먹은 유리병 고통스러워하는 유리병인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