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 이정하

마지막 잎새 2011. 1. 29. 06:03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이정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까운 거리 / 이정하  (0) 2011.02.01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0) 2011.01.31
멀어질수록   (0) 2011.01.26
그는 떠났습니다 / 이정하  (0) 2011.01.25
간격3 / 이정하  (0) 201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