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안도현

충분한 불행 / 정호승

마지막 잎새 2011. 6. 30. 07:41


 

 

 

 

충분한 불행

정호승

 

 

나는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

불행이라도 충분하므로

혹한의 겨울이 찾아오는 동안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죽음이란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지만 살아갈수록 함께 살아가는 것

더러운 물에 깨끗한 물을 붓지 못하고

깨끗한 물에 더러운 물을 부으며 살아왔지만

나의 눈물은 뜨거운 바퀴가 되어

차가운 겨울 거리를 굴러다닌다

남의 불행에서 위로를 받았던 나의 불행이

이제 남의 불행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

밤늦게 시간이 가득 든 검은 가방을 들고

종착역에 내려도

아무데도 전화할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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