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마지막 잎새 2011. 8. 19. 19:06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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