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마지막 잎새 2012. 1. 2. 07:45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 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 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불을 밝히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부터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서린다.

첫눈은 첫사랑과 같은 것인가.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사람들이 눈 내린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창 밖을 본다.
거리의 나뭇가지마다
켜켜이 눈이 쌓여있고
하늘은 더욱 푸르다
첫눈이 내렸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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