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새벽을 기다리며

마지막 잎새 2012. 4. 9. 06:38

 

 




새벽을 기다리며

도 종 환


검푸른 하늘 위로 싸아하게 별들이 빛나고
온 들을 서리가 하얗게 덮는 동안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밤새도록 서리에 덮힌 들길을 걸어
고개 하나를 또 넘어야 한다.
가시숲 헤치고 잡목수풀 지나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아직 길이 끝나지 않은 저 숲에는 녹슨 철망도 있다 하고
발을 붙드는 시린 계곡물과 천길 벼랑도 있다 한다.
잠 못 드는 이 밤 산짐승 울음소리가 가가이에 들리고
어쩌면 겨울이 길어
바람 또한 질기게 살을 때리며 뒤를 따라오기도 할 것이다.
눈물로 가야 할 고난의 새벽이 가까워오는 동안
이 길의 첫발을 우리로 택하여 걷게 하신 뜻을 생각했다.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함께 떠나기로 한 벗들을 생각했다.
어찌하여 우리가 첫새벽을 택해 묵묵히 이 길을 떠났는지
어찌하여 우리의 싸움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는지
우리가 떠나고 난 뒤 남겨진 발자국들이 길이 되어
이 땅에 문신처럼 새겨진 뒷날에는 꼭 기억케 될 것임을 생각했다


시집 *접시꽃 당신2* (정직한 아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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