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슬픔의 만다라
류시화
너는 내 최초의 현주소 늙은 우편 배달부가 두들기는 첫번째 집 시작 노트의 첫장에 시의 첫문장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른 사람들은 너를 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는 내 마음 너는 내 입 안에서 밤을 지샌 혀 너는 내 안의 수많은 나
정오의 슬픔 위에 새들이 찧어대는 입방아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물고기처럼 달아나기만 하는 생 위에 고독한 내 눈썹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내가 그걸 원하니까 나는 늙음으로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바닷새처럼 해변의 모래 구멍에서 고뇌의 생각들을 파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내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넌 알몸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내게 말해다오 네가 알고 있는 비밀을 어린 바닷게들의 눈속임을 순간의 삶을 버린 빈 조개가 모래 속에 감추고 있는 비밀을 그러면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만 너를 위한 것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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