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당신 앞에 앉으면

마지막 잎새 2012. 10. 7. 19:45


 

당신 앞에 앉으면

도종환



나의 마음이 어지러운 물살로 흔들릴 때

당신은 나를 불러주십니다
당신이 정녕 어디에 있을까 찾아 헤맬 때
당신은 나를 가까이 오라 부르십니다

억새풀 하나 당신 앞에 옮겨 놓고
오랜 날 지나 있어도
빗줄기를 불러모아
그 억새풀과 함께 얼어붙으며
당신께 드린 것은 풀 하나 버리지 않는
그 속에 당신 마음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겨울 하늘 붉은 노을로 내려와
이것이 아직도 타고 있는
당신 마음임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당신 가까이 마주 와 앉아야
비로소 솔바람 소리로 가만가만 제게 오시고
못 보던 새 한 마리 가까이 있게 하여
당신의 소리를 알려주십니다

당신 앞에 앉으면 온갖 어지러운
유혹과 사치스런 삶들이
한낱 짧은 연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시고
저렇게 다 버리고도 죽지 않은
겨울나무 속에서
홀로 가는 길 서러우나
외롭지 않음을 깨우치십니다.

슬픔 하나가 마음을 얼마나
깨끗이 닦아내는지
알게 하십니다.



*시집 -접시꽃 당신 2 에서-



'도종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사랑  (0) 2012.10.27
별 아래 서서  (0) 2012.10.16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  (0) 2012.09.27
당신과 가는 길  (0) 2012.09.20
사랑의 길  (0) 201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