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

은행나무 그늘 / 백기만

마지막 잎새 2014. 7. 5. 10:08
 

 

 

은행나무 그늘
백기만

 

 


훌륭한 그이는 우리 집을 찿아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뺨이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로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무가지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아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이를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 드리운 성자 같은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도 은행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지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바람처럼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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