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겨울나기 / 도종환

마지막 잎새 2010. 12. 9. 01:30




      겨울나기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


      - 시집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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