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님은 더 깊이 사랑하는데

마지막 잎새 2011. 11. 30. 05:23


 

 

 



님은 더 깊이 사랑하는데
도종환

사랑을 하면서도 잎 지는 소리에 마음 더 쏠려라
사랑을 하다가도 흩어지는 산향기에 마음 더 끌려라
님은 더 깊이 사랑하는데 나는 소쩍새 소리에 마음 더 끌려라
사랑을 하다가도 사라지는 별똥 한줄기에 마음 더 쏠려라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비린것을 눌러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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