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

갈대 / 김춘수

마지막 잎새 2012. 1. 17. 04:14






갈 대
 김 춘수


1. 너는 슬픔의 따님인가 부다
너의 두 눈은 눈물에 어리어
너의 시야(視野)는 흐리고 어둡다
너는 맹목(盲目)이다.
면할 수 없는 이 영겁의 박모(薄暮)를
전후좌우로 몸을 흔들어
천치(天痴)처럼 울고 섰는 너
고개 다수굿이 오직 느낄 수 있는 것,
저 가슴에 파고드는 바람과 바다의 흐느낌이 있을 뿐
느낀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 다른 눈
눈물겨운 일이다

2. 어둡고 답답한 혼돈을 열고
네가 탄생 하던 처음인 그날
우러러 한 눈은 하늘의 무한을 느끼고
굽어 한 눈은 끝없는 대지의 풍요를 보았다
푸른 하늘의 무한
헤아릴 수 없는 대지의 풍요
그때부터였다.
하늘과 땅의 영원히 잇닿을 수 없는
상극의 그 들판에서
조그만 바람에도 전후좌우로
흔들리는 운명을 너는 지녔다
황홀히 즐거운 창공에의 비상
끝없는 낭비의 대지(大地)에의 못 박힘
그러한 위치에서 면할 수 없는 너는
하나의 자세를 가졌다

오! 자세 ― 기도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사랑이란 이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바다 / 김남조  (0) 2012.01.20
이젠, 내가 울겠습니다 / 강재현  (0) 2012.01.19
그 곳에 가면 / 蓮興 / 김경태  (0) 2012.01.15
사랑하지 않아도 / 전소영  (0) 2012.01.12
행복론 / 최영미  (0) 201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