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마지막 잎새 2010. 9. 14. 12:09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한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 류 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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