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묘비명 / 서정윤

마지막 잎새 2014. 7. 15. 02:55

 



묘비명
서정윤


사랑하는 이여
나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어주오

여기 들꽃처럼 피어
긴 세월의 한 점을 지나간,
사랑으로 살다가 흙으로 사라진
고단한 영혼이 잠들어있네
사랑은 기쁨의 순간보다
고통의 나날이 더 많은 것을
하지만 짧은 환희가
머나먼 날들의 힘겨움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자신의 가슴에 있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깨달아
영원히 꿈틀대며 기어다닐 것 같았던
배추흰나비 애벌레처럼
미래의 준비된 계획을 알지 못해 허둥대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놀라
파도처럼 뒷 물결에 떠밀리어
바위에 가서 깨져버린 상처 많은 시인이었다고

사랑하는 이여
내 삶의 많은 부분이 그대 위해 있고
내 생각의 큰 부분이 그대 향해 있네
순간순간 내 마음의 진실을 말하지만
그것이 진리가 되지는 못하였기에
나는 꽃이 진 들풀이 되어

거친 새들로부터 씨앗들을 지키고 있네
그대를 구름의 높이로 올리네


시집: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중
2장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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