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

이 저녁의 어두운 풍경 / 권혁욱

마지막 잎새 2013. 8. 20. 06:58

 

 



이 저녁의 어두운 풍경
권혁욱


이 저녁의 풍경은 낯이 익다
나는 천변에 나와 썩은 물 위로
지는 해를 오래 바라보고 있다
짧은 소매에 반바지 입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건너편 언덕의 저 부부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것이 산문적인 것은 아니다
저들은 완성된 하나의 문장을
조심조심 디디며 건너가는 중이다
개천 썩은 물 위를 부유하는 쓰레기들도
저처럼 모여 결승 문자를 이룬다
저 쓰레기들처럼 離合하거나 集散하는 삶도
해 지는 천변, 썩은 황홀 아래서는
모두 용서하라는 것일까

리어카 위의 木馬는 아이들을 태우고
아까부터 고개를 주억거린다 긍정은
목마를 흔드는 할아버지의 권태 속에도
저녁의 어스름 속에도 있다
저 물은 쉬지 않고
복개한 어둠 쪽으로 다음다음 흐르고
나는 모른다, 저 물이 공테이프처럼 뻑뻑하게
다만 뻑뻑하게 흘러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를
다만 나는 이 낯익은 저녁의 풍경에
마음을 걸어두고 그 마음 안쪽에
살림 차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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