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 이성복 바다 이성복 서러움이 내개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누이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10.16
민들레 / 신용목 민들레 신용목 가장 높은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기에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구나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10.13
梧桐꽃 / 장석남 梧桐꽃 장석남 다른 떄는 아니고,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하고 한참만에 고개를 들면 거기에 오동꼬치 피었다 사라온 날들이 아무런 기억에도 없다고, 어떡하면 좋은가... 평화로움으로 고개를 들면 보라 보라 보라 오동꽃은 피었다 오오 무엇을 펼쳐서 이 꽃들을 받을 것..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10.02
치자꽃 설화 / 박규리 치자꽃 설화 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7.17
묘비명 / 서정윤 묘비명 서정윤 사랑하는 이여 나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어주오 여기 들꽃처럼 피어 긴 세월의 한 점을 지나간, 사랑으로 살다가 흙으로 사라진 고단한 영혼이 잠들어있네 사랑은 기쁨의 순간보다 고통의 나날이 더 많은 것을 하지만 짧은 환희가 머나먼 날들의 힘겨움을 버틸 수 있는 힘..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7.15
딸기 / 장석주 딸기 장석주 비애로 단단해진 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의 목록 속에 있다 초록줄기에 알알이 맺혀있는 너는 별들의 계보에 속해있다 그러나 붉은 것은 왜 오래가지 않는가 섹스후 동물은 왜 슬픈가 차마 꽉 깨물어 터뜨리지 못한 채 혀 위에 올려 놓고 굴리는 이 정체불명의 비애가 ..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7.13
봉숭아 / 도종환 봉숭아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내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6.26
그립다고 말했다 / 정현종 그립다고 말했다 정 현 종 두루 그립다고 너는 말했다 그러자 너는 꽃이 되었다 그립다는 말 세상을 떠돌아 나도 같이 떠돌아 가는데 마다 꽃이 피었다 닿는 것마다 꽃이 되었다 그리운 마음 허공과 같으니 그 기운 막막히 퍼져 퍼지고 퍼져 마음도 허공도 한 꽃송이! 두루 그립다고 너는 ..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6.18
별에게 묻다 / 고두현 별에게 묻다 고두현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절벽에 빗금 치며 꼬치는 별빛 좌선대 등뼈 끝으로 생에 단 한 번 피고 지는 대꽃 틔울 때까지 너를 기..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6.14
더딘 사랑 / 이정록 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달이나 걸린다 제1부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중에서 시집/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2014.06.12